Album (사진)/사찰여행

신륵사(神勒寺)

法雨_김성근 2013. 8. 8. 22:23

남한강변을 지키는 천 년 고찰, 신륵사(神勒寺)

아름다운 남한강변 봉미산(鳳尾山) 자락에 자리 잡은 신륵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본사인 용주사(龍珠寺)의 말사로서 신라 진평왕(眞平王) 때 원효(元曉)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며 고려 시대의 고승 나옹(懶翁)선사가 입적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조선시대 예종 1년(1469년)에 세종대왕의 무덤인 영릉(英陵)을 여주로 옮길 때 왕실의 무덤을 지키는 원찰(願刹)로 지정되어 크게 번창하였다. 화려한 극락전과 보물 제180호로 태조 이성계가 세운 고려 말 불교계의 거목이었던 지공, 나옹, 무학 세 스님의 영정을 모셔 놓은 조사당과 명부전 등의 건물을 비롯해  보물 제23호인 대장각기비, 보물 제225호인 다층석탑과 보물 제226호인 다층전탑, 목은 이색이 석등 비문을 쓴 보물 제231호인 보제존자 석등 등의 여러 유물들을 간직하고 있다.

그리고 고려 때부터 벽절[甓寺]이라 불려지기도 하였는데, 이는 경내의 동대(東臺) 위에 있는 다층전탑(多層塼塔)을 벽돌로 쌓은 데서 유래한 것이다.

 

  일주문(一柱門)

   극락보전(極樂寶殿, 경기도유형문화제 제128호)

 아미타불을 주존(主尊)으로 모신 신륵사의 중심 전각이다. 아미타불은 서방정토 극락세계를 관장하는 부처님으로 죽은 이의 극락왕생과 함께 중생들의 수명장수와 안락을 도와주시는 분이다. 신륵사가 과거 영릉의 원찰 기능을 가진 전각으로 해석할 수 있다. 건물은 전면 3칸, 측면 2칸의 다포계 건물로 팔작지붕을 하고 있다. 법당의 천정은 우물천정이며 불단에는 정교하게 짜여진 닫집이 있다. 극락보전 내부 대들보에 나옹화상의 필적이라 구전되어 오는 "천추만세(千秋萬歲)"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극락보전 내부에 모셔진 목조아미타삼존 (협시보살 : 대세지보살 & 관세음보살)


극락보전 지붕의 다포형식


극락보전 축대 형식

 

  나옹화상의 친필로 알려져 온 천추만세(千秋萬勢) 현판

 


  다층석탑(보물 제225호)   기단(基壇)을 2단으로 마감한 후, 그 위로 여러 층의 탑신(塔身)을 세웠다.

통일신라와 고려시대의 일반적인 석탑양식을 따르고 있으나, 각 부분의 세부적인 조형방법은 전혀 달라서

기단에서부터 탑신부까지 전부 한 장씩의 돌로 이루어져 있다. 바닥돌 윗면에는 연꽃을 돌려 새겼다.

아랫츨 기단의 네 모서리에 새겨진 기둥 조각은 형식적이나, 특이하게도 물결무늬를 돋을새김 해두어 눈길을 끈다. 아랫층 기단의 맨 윗돌을 두껍게 얹어놓아 탑의 안정감을 높이고 있으며, 윗층 기단의 모서리에 꽃 모양을 새긴 기둥을 두고 각 면마다 용(龍)무늬를 깊이 판 모습은 석공의 솜씨를 드러낸다. 탑신부의 각 지붕틀은 밑면의 받침이 얇은 한 단이며, 네 귀퉁이에서 가볍게 치켜 올려져 있다. 각부분 아래에 괴임을 둔 점으로 보아 고려시대 석탑 양식을 일부분 남기고 있으나, 세부적인 조각양식 등에서 고려 양식을 벗어나려는 여러가지 표현이 돋보인다.

 

  관음전(觀音殿)


관음전 주련


관세음보살좌상


관음전 주련

 

  심검당(尋劍堂)  강원(講院) 구실을 하던 정면 6칸의 ㄱ자형 건물로 선각당(禪覺堂)이라고도 부른다.

 

  적묵당(寂默堂)    선원(禪院)구실을 하던 건물로서, 현재는 종무소(宗務所)로 활용되고 있다.

 


조사당 (祖師堂)    [보물 제 180호, 1963년 지정]

 신륵사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건물로 지공(指空), 나옹(懶翁), 무학(無學) 3화상의 덕을 기리고 법력을 숭모하기 위해 영정을 모셔놓은 곳이다.

낮은 돌기단 위에 세운 정면 1칸, 측면 2칸의 특이한 구조를 지닌 건물로서 겹처마에 팔작지붕이며 전면을 제외한 3면이 벽으로 마감되어 있다. 건물 내부에 기둥없이 천정을 모두 우물천정으로 짜서 만든 조선초기 다포집 계통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

     무학대사          지공화상         나옹화상

 

3분의 화상은 서로간에 관계가 돈독했던 스승과

제자로 고려말 기울어 가는 불교계에 한 가닥 빛

이 되었던 스님들이다.

 

▲ 홈페이지 설명에 지공화상과 나옹화상의 위치

가 서로 뒤바뀌어 있어 홈피에 올렸더니, 수정해

놓았군요

 

    향나무    경기도 보호수로서 600여 년전 무학대사가 심었다고 함 (높이 5m, 나무둘레 1.3m)

 

  명부전(冥府傳, 十王殿, 地藏殿)  살아있는 후손과 조상을 위하여 부처님전에 복을 발원하는 전각이다.  

 

시왕상(十王像)과 판관(判官)


명부전의 木造지장보살삼존불

(左 : 道明尊子, 右 : 無毒鬼王)

 

시왕상(十王像)과 판관(判官)


  봉송각(奉送閣)    사십구재, 또는 기타의 재를 모신 후 떠나가는 영가(靈駕)들을 극락세계에 태어나도록

                             마지막 전송하는 전각(殿閣)이다.


  범종각(梵鐘閣) 


 범종(梵鐘) 영조 49년(1773)에 주조


  삼성각(三聖閣)   칠성(七星,熾盛光如來)탱화와 산신(山神)탱화, 독성(獨聖,那畔尊子)탱화가 봉안되어 있다.


   구룡루(九龍樓)


대웅전 마당에서 바라다 본 구룡루


구룡루 내부에 걸려있는 글씨

  수령 600년의 은행나무  (경기도 보호수 : 높이 22m, 나무둘레 3.1m, 2.7m)


세심정(洗心亭) - 목을 축이는 샘터


청자정(靑磁亭) - 세심정의 다른 이름

 

     신륵사보제존자석종앞 석등           보제존자석종                                 보제존자석종비

 신륵사보제존자석종(普濟尊者石鐘, 보물 제228호) 

신륵사 뒷편에 모셔져 있는 나옹화상의 사리탑이다. 널찍하게 마련된 단층 기단 위에 2단의 받침을 둔 후 종 모양의 탑신을 올린 모습이다. 기단은 돌을 쌓아 넓게 만들고 앞쪽과 양옆으로 계단을 두었다. 탑신은 아무런 꾸밈이 없고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으로 불꽃무늬를 새긴 큼직한 보주(寶珠, 연꽃봉오리 모양의 장식),가 솟아 있다. 고려 후기의 석종형 부도 양식을 보여주는 좋은 작품이다.


보제존자석종비(普濟尊者石鐘碑, 보물 제229호) 


지붕돌은 목조건물의 기와지붕처럼 막새기와와 기왓돌이 표현되어 있다.


  혹시,용(龍) 문양일까요 ?

  보제존자 나옹의 묘탑과 영정을 모신 진당(眞堂)을 조성한 내역을 적은 탑비이다. 보제존자 나옹은 선종과 교종을 통합하여 불교를 다시 일으켜 세우려 하였던 승려로, 양주 회암사의 주지로 있다가 왕명을 받아 밀양으로 가던 도중 이 곳 신륵사에서 입적하였다.

비는 2단의 지대석 위에 연꽃무늬를 새긴 비좌를 얹어 비몸을 새웠으며, 대리석으로 다듬은 비몸은 양옆에 화강암 기둥을 세웠으며, 지붕돌(蓋石)은 목조건물의 기와지붕처럼 막새기와와 기왓돌이 표현되어 있다. 고려 우왕 5년(1379)에 세워진 비로, 비문은 당대의 문장가인 이색이 짓고, 서예가인 한수가 글씨를 썼는데 부드러운 필치의 해서체이다, 전체적으로 고려 후기의 간략화된 형식을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

 


    보제존자석종앞 석등(石燈, 보물 제231호)


 


 

 많은 부분이 훼손되어 있는 비천상(飛天像)

 

 이 돌은 갈아서 먹으면 아들을 낳는다는 속설

 의 피해라는.....

  보제존자석종 바로 앞에 있는 석등은 석종부도를 장엄하기 위한 공양구이다. 화강암이 주재료로 사용되었고 화사석을 머리석재로 사용하여 조각이 용이하도록 하였다. 단순화되고 남성적인 느낌을 주는 석종형 부도에 비해 이 석등은 섬세하고 화려한 느낌을 풍기고 있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석등의 정통을 이으면서도 비천(飛天)과 반룔문(蟠龍文)이 새겨져 그 형태가 매우 아름다운, 세부적으로는 다양한 변형을 모색하여 화려하고 장식적인 면이 강조된 고려후기의 대표적 작품이다.

 

신륵사 다층전탑(塼塔, 보물 제226호)

 이 절은 고려 때부터 벽절(甓寺)이라고도 불렸다. 경내의 동대(東臺) 위에 자리잡고 있는데, 이 탑 전체를 흙으로 구운 벽돌(塼)로 쌓아 올린 데서 유래한 것이다. 탑은 기단을 2층으로 마련하고 다시 3단의 계단을 쌓은 후 여러 층의 탑신을 올렸다. 기단과 계단은 화강암으로 만들었으며, 탑신부는 흙벽돌로 6층까지 쌓아 올렸는데, 그 위에 다시 몸돌 하나를 올려놓고 있어 7층 같아 보이기도 하는 애매한 구조이다.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전탑과 달리 몸돌에 비하여 지붕돌이 매우 얇아 전체가 주는 인상이 사뭇 독특하다.

지붕돌 밑면의 받침은 1~3층이 2단, 4층 이상은 1단이며, 지붕돌 위로도 1층은 4단, 2층 이상은 2단씩의 받침을 두었는데 이 또한 특이한 형태이다. 꼭대기에 머리장식이 있기는 하나 얇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완성된 형태로 남아있는 전탑이다.


   대장각기비각(大藏閣記碑閣, 보물 제230호)  이색과 나옹의 제자들이 대장경을 보관하기 위해 대장각을

                       세운 연유를 기록한 비석이다


대장각기비(大藏閣記碑, 보물 제230호)


 


강월헌(江月軒) 나옹선사의 입적 후, 나옹선사를 추념하여

                         당호를 따서 지은 화장터 석탑옆 정자


 3층석탑 나옹선사가 입적한 후 화장한

               장소를 기념하여  세운 탑

 

                       여주신륵사 사적비                                                인류화합공생 기원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