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 본사로서 지장도량으로 알려져 있는 도솔산(or 선운산) 선운사는 조선 후기 선운사가 번창할 무렵에는 89개의 암자와 189개에 이르는 요사(寮舍)가 산중 곳곳에 흩어져 있어 장엄한 불국토를 이루기도 하였다.
선운사의 창건에 대해서는 신라 진흥왕이 창건했다는 설과 백제 위덕왕 24년(577)에 고승 검단(檢旦, 黔丹)선사가 창건했다는 두 가지 설이 전하고 있다. 첫 번째 설은 신라의 진흥왕(재위기간 540∼576)이 만년에 왕위를 내주고 도솔산의 어느 굴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는데, 이때 미륵 삼존불이 바위를 가르고 나오는 꿈을 꾸고 크게 감응하여 중애사(重愛寺)를 창건함으로써 이 절의 시초를 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당시 이곳은 신라와 세력다툼이 치열했던 백제의 영토였기 때문에 신라의 왕이 이곳에 사찰을 창건하였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따라서 시대적ㆍ지리적 상황으로 볼 때 검단선사의 창건설이 정설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고등학교 친구들과 워크샵 일정 중에 들렀는데 일행들의 시간에 맞추느라 성보박물관 등 세세한 면을 다 보지 못해 아쉬운 마음을 안고 왔다.
선운사 일주문
일주문을 지나 절마당으로 통하는 다리 "극락교(極樂橋)". 이 다리를 건너면 극락으로 통하는 길일까?
천왕문 과 사천왕상
대웅보전(大雄寶殿 보물 290호) 선운사의 본전(本殿)으로서 신라 진흥왕 때 세운 것으로 전하며, 지금 있는 건물은 조선 성종 3년(1472)에 중건하여 임진왜란 때 전소되었다가 광해군 5년(1613)에 다시 지은 것이다. 건물의 평면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규모로 긴 장방형 평면을 이루고 있고, 전체적으로 기둥 옆면 사이의 간격이 넓고 건물의 앞뒤 너비는 좁아 옆으로 길면서도 안정된 외형을 지니고 있다.
다포계(多包系) 맞배지붕에, 벽의 양 측면에는 풍우를 막기 위해 널판으로 풍판(風板)을 대었다. 막돌로 허튼 쌓기를 한 얕은 기단 위에 막돌 초석을 놓고 약한 배흘림이 있는 두리기둥을 세웠다.
정면의 모든 칸에는 빗살 창호를 달았으나 후면에는 중앙 칸에만 창호를 달고 양 측면의 협칸에는 교창(交窓)을 달았다. 동쪽 면은 모두 벽체로 처리하고 서쪽 면에는 외짝 출입문을 달았다.
내부는 통칸으로서 불벽(佛壁)을 한 줄로 세워 그 앞에 불단을 만들었다.
천장에는 사실감이 돋보이는 커다란 운룡문(雲龍紋)이 그려져 있고, 안쪽 천장에는 우물 정(井)자 모양을 한 우물 천장을 설치하여 구름ㆍ학ㆍ연꽃 등으로 장엄하였다. 내부 벽에는 산수ㆍ비천ㆍ나한 등을 벽화로 장식하였고, 닫집과 중앙의 불단 등은 비교적 간략하고 단순한 모습이다. 이 건물은 미술사적으로 조선 후기의 뛰어난 건축기술과 조형미를 지니고 있다.
육층석탑(전북유형문화재 제29호) 대웅전 앞마당에 자리하고 있는 고려시대의 석탑이다.
화강암으로 만들었으며, 방형의 축대 안에 지대석을 놓고 그 위에 정사각형의 돌 윗변을 둥글게 처리한 하대석을 얹었다. 그 위에 다시 방형의 중석(中石)을 세우고 중석의 네 귀는 우주(隅柱)로 조각하였다. 갑석(甲石)은 방형으로 되어 있는데, 아랫면은 수평으로 다듬고 중앙에는 1단의 받침을 새겼으며 윗면은 약간의 경사를 이룬 채 중앙에 1단의 옥신(屋身) 괴임이 있다. 각 층의 옥신은 하나의 돌로 만들고 네 귀마다 우주를 조각하였으며, 추녀는 수평을 유지한 채 하늘을 향해 약간 반전되어 있고 낙수면의 경사는 완만한 편이다.
대웅전 삼존불 불단 위에는 흙으로 빚은 소조(塑造) 삼세불을 봉안하고 삼존 사이에는 근래에 조성된 보살입상을 협시로 세웠다.
중앙의 비로자나불을 주존(主尊)으로 하여, 왼쪽에 아미타불과 오른쪽에 약사불을 모셨다.
삼존불상 뒤의 후불벽화는 1688년(숙종 14)에 조성한 것으로, 중앙의 비로자나불회도를 중심으로 좌우에 아미타회상도· 약사회상도가 각각 자리 잡고 있다.
대웅전 불단 뒷벽의 관세음보살 벽화
선운사 대웅전 불단 뒷벽에 그려진 커다란 신장 그림입니다.
선운사 대웅전 불단 뒷벽에 그려진 커다란 신장 그림입니다.
대웅전 천장 벽화 사실감이 돋보이는 커다란 운룡문(雲龍紋)이 그려져 있다.
대웅전 건물 기둥위의 공포양식(多包形式)
관음전 내의 천수천안관세음보살
만세루(萬歲樓) 정면 9칸 측면 2칸 규모의 강당건물로서, 고려시대에 지어진 건물이지만 19세기 말에 중건된 익공계(翼工系) 구조의 맞배지붕 형식을 취하고 있다. 절의 창건 당시부터 건립되어 여러 차례의 중수가 있었으며, 현재도 700년이 된 두 개의 아름드리 기둥이 남아 있어 옛 자취를 느끼게 한다.
선운사 동백나무 숲(천연기념물 제184호) 이 동백나무숲은 백제 위덕왕 24년(577) 선운사가 세워진 후에 만들어진 것이다. 나무의 평균높이는 약 6m이고 둘레는 30㎝로서, 절 뒷쪽 비스듬한 산 아래에 30m 넓이의 가느다란 띠모양으로 조성되어 있다.
동백나무는 차나무과에 속하는 나무로서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일본ㆍ중국 등의 따뜻한 지방에 분포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남쪽 해안이나 섬에서 자란다. 꽃은 이른 봄에 피는데 매우 아름다우며, 꽃이 피는 시기에 따라 춘백(春栢)ㆍ추백(秋栢)ㆍ동백(冬栢)으로 부른다. 이 동백나무숲은 아름다운 사찰경관을 돋보이게 하고 있으며,사찰림으로서 문화적 가치와 동백나무숲으로서 생물학적 보존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 보호하고 있다.
명부전
팔상전
영산전
종각(鐘閣)
조사전(祖師殿)
산신당
도솔암으로 오르는 길목의 단풍
도솔암으로 오르는 길에 만난 늦둥이 "꽃무릇(상사화)".
상사화는 석산 또는 꽃무릇이라 불리기도 하는 수선화과의 꽃으로 그 붉기가 동백꽃에 뒤지지 않는다.
8~9월이면 선운사 일대와 마애불이 있는 도솔암까지 3km에 이르는 골짜기 주변에서 피어 장관을 이루는 선운산의 또 하나의 명물이다. 이 상사화에는 애절한 사연이 담겨 있다. 옛날 한 여인이 선운사에 며칠 불공을 드리러 왔다가 스님 한 분에게 연모의 정을 느껴 그만 상사병에 걸리고 말았다. 시름시름 앓던 그 여인은 결국 죽고 말았고, 그 죽은 여인이 상사화로 다시 피어났다는 이야기이다.
도솔암 도솔천 내원군(兜率天 內院宮,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25호) 천인암(千인岩)이라는 기암절벽과 맑은 물이 흐르는 깊은 계곡 사이에 자리한 내원궁은 고통 받는 중생을 구한다는 지장보살(地藏菩薩)을 모신 곳으로 상도솔암이라고도 부른다. 거대한 바위 위에 초석만을 세우고 만든 이 건물은 작은 규모이지만 매우 안정된 느낌을 준다.
이 내원궁은 통일신라 때부터 있었다는 말도 전하나, 현재의 건물은 조선 초기에 짓고 순조 17년(1817)까지 몇차례 보수한 것이다.
금동 지장보살좌상(보물 280호) 고려 후기의 불상 가운데 최고의 걸작으로 뽑히는 이 불상은 사후세계의 주존인 지장보살을 조각한 것으로 도솔암 내원궁에 모셔져 있다. 크기나 형태는 대웅전에 모신 보살상과 비슷하지만 조각 수법은 훨씬 사실적이다.
균형 잡힌 얼굴은 단정하면서도 우아한 인상을 주며 어깨의 곡선은 부드럽게 처리되어 유연한 모습을 보여준다.
승형(僧形)으로 표현되는 일반적인 지장보살과는 달리 두건을 쓰고 있는 점은 고려시대에 널리 유행하던 형식이다. 대좌(臺座)와 광배(光背)가 모두 없어지고 불신(佛身)만 완전하게 남아 있다.
도솔암 극락보전과 삼존불(지장보살/아미타불/관세음보살)
관음전 앞의 범종
도솔암으로 오르는 길목의 숲에서 만난 "법구경 말씀"
"도솔암 마애불"(보물 제1200호) 고려시대에 조각한 것으로 보이는 이 불상은 우리나라에서는 가장 큰 마애불상 중의 하나로 미륵불로 추정된다. 지상 3.3m의 높이에서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있는 불상의 높이는 15.6m, 폭이 8.48m가 되며, 연꽃무늬를 새긴 계단모양의 받침돌까지 갖추었다. 머리위의 구멍은 동불암이라는 누각의 기둥을 세웠던 곳이다.
명치 끝에는 검단선사가 쓴 비결록을 넣었다는 감실(龕室)이 있다. 조선말에 전라도 관찰사로 있던 이서구가 감실을 열자 갑자기 풍우와 뇌성이 일어 그대로 닫았는데, 책 첫 머리에 "전라감사 이서구가 열어본다" 라는 글이 쓰여 있었다고 전한다. 이 비결록은 19세기 말 동학의 접주 손화중이 가져갔다고 한다.
도솔암 나한전(羅漢殿/전라북도 문화재 자료 제110호) 조선 말기에 세운 것으로 보이는 이 건물은 나한, 즉 아라한을 모시는 곳이다. 아라한은 소승불교의 수행자 가운데 가장 높은 지위에 있는 성자(聖者)를 지칭한다.
조선시대에 도솔암 용문굴에 살던 이무기가 마을 주민들을 괴롭히자 이를 물리치기 위하여 인도에서 나한상을 들여와 안치하였더니 이무기가 사라졌으며, 이후 이무기가 다시는 나타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하여 이 건물을 세웠다는 전설이 있다.
도솔암 장사송(長沙松/ 천연기념물 제354호) 이 나무는 반송(盤松)으로, 나이는 약 600살 정도로 추정된다.
높이 23m, 가슴높이의 둘레는 3.07m이며, 높이 3m 정도에서 줄기가 크게 세 가지로 갈라져 있고, 그 위에 다시 여러 갈래로 갈라져 부챗살처럼 처져 있다. 이 나무의 명칭을 "장사송" 또는 "진흥송"이라 불려지는데, 장사송은 이 지역의 옛 지명인 장사현(長沙縣)에서 유래한 것이며, 진흥송은 옛날 진흥왕이 수도하였다는 진흥굴 앞에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진흥굴(眞興窟) 옛날 진흥왕이 수도했었다는 전설이 있는 굴.
도솔암으로 가는 길목의 "차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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