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공부방/불교 공부방

10대제자 [十大弟子]

法雨_김성근 2010. 11. 28. 12:45

                                        

 

10대제자 [十大弟子] - 석가모니 부처님의 출중한 제자 열 사람


 

후세에는 석가십성(釋迦十聖)으로도 일컬어졌다.

- 두타(頭陀)제일, 수행(修行)제일로 칭송되는 마하가섭(摩訶迦葉),

- 다문(多聞)제일의 아난타(阿難陀),

- 지혜가 제일인 사리불(舍利弗),

- 신통력(神通力)에 제일인 목건련(目犍連),

- 심안(心眼)을 떴다고 하여 천안(天眼)제일로 칭송된 아나율(阿那律), 

- 공(空)사상 이해에 밝은 해공(解空)제일의 수보리(須菩提), 

- 설법(說法)에 뛰어나 설법 제일인 부루나(富樓那), 

- 토론을 잘하여 논의(論議)제일인 가전연(迦旃延),

- 계를 잘 지켰다는 지계(持戒) 제일인 우바리(優婆離),

- 석가의 아들로서 남몰래 행(行)을 잘하여 밀행(密行)제일이라는 칭송을 들은 나후라(羅喉羅).


 

 

  가섭 [Mahkyapa, 迦葉] - 두타제일(頭陀第一)


별칭 : 마하가섭(摩訶迦葉), 대음광(大飮光), 대구씨(大龜氏), 두타제일(頭陀第一)

출생지 : 인도 왕사성(王舍城) 마하바드라


음을 따서 마하가섭(摩訶迦葉), 의역하여 대음광(大飮光), 대구씨(大龜氏)라고도 한다.

인도 왕사성(王舍城) 마하바드라의 거부였던 브란만 미그루다칼파의 아들로서 비팔라 나무 밑에서 출생하였다.

어린 나이로 비야리성(城)의 가비리라는 바라문의 딸과 결혼하였으나, 12세에 부모를 잃고 세속적인 욕망의 허무함을 깨달아 아내와 함께 출가하였는데, 그 후 석가를 만나 가르침을 받고 제자가 되었다.


8일 만에 바른 지혜의 경지를 깨쳐 자기 옷을 벗어 석가에게 바친 후 부처가 주는 마을 밖의 쓰레기 더미에서 주워온 헌옷의 천으로 만든 분소의(糞掃衣)를 입고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얻었다고 한다.

욕심이 적고 족한 줄을 알아 항상 엄격한 계율로 두타(頭陀: 금욕 22행)를 행하고, 교단(敎團)의 우두머리로서 존경을 받았으며, 부처의 아낌을 받았다.


어느 날 사위국(舍衛國)의 고요한 숲 속에 오랫동안 머물다가 길게 자란 수염과 머리, 헌옷을 입은 채 기원정사(祇園精舍)를 찾아갔을 때, 사람들은 그를 속으로 경멸하였다.

그러나 석가는 여러 비구(比丘)들의 마음을 알아차리고,

ꡒ잘 왔다. 가섭이여, 여기 내 자리에 앉아라.ꡓ 하고는, 가섭존자가 얻은 훌륭한 공덕이 자기 자신이 얻은 공덕과 다를 바 없다고 칭찬하면서,

석가는 모든 무상(無上)의 정법(正法)을 가섭에게 부촉(咐囑)하며 자신이 죽은 뒤 모든 수행자의 의지처가 될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그래서 그를 십대 제자 중 "두타제일(頭陀第一)"이라 하였다.


한때 바사성(婆娑城)에 머물다가 돌아오는 도중에 석가가 열반(涅槃)했다는 소식을 듣고, 즉시 쿠시나가라의 천관사(天觀寺)로 달려가 스승의 발에 예배한 후 다비(茶毘)의식을 집행하였다.

이어 그는 500명의 아라한들을 모아 스스로 그 우두머리가 되어, 아난(阿難)과 우바리(優婆離)로 하여금 경(經)과 율(律)을 결집(結集)하도록 하였다.

석가가 죽은 뒤 제자들의 집단을 이끌어 가는 영도자가 되었는데, 선가(禪家)에서는 그를 부법장(付法藏) 제1조(祖)로 높이 받들고 있다.

 


  가전연 [Mahktyyana, 迦旃延] - 논의제일(論議第一)


별칭 : 논의제일

출생지 : 서인도 아반티국 우제니이성


서인도 아반티국 사람이다.

우제니이성의 크샤트리아 출생으로 국왕 챤다파죠다의 명령을 받고 석가를 모시기 위하여 석가 있는 곳에 이르러 석가의 말을 듣고 출가하였다.

최초의 성과(聖果)를 얻은 후 귀국하여 왕을 교화하고, 왕을 위해 여러 가지 꿈을 해설해 주었다.


그의 생애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없으나, 인도의 변방에 이르기까지 교화에 힘썼고,

특히 법상(法相)을 분별하기 위해 논의(論議)를 펴는 데 있어서는 가장 뛰어난 능력을 가졌었다.

그래서 석가의 제자 중 논의제일(論議第一)이라 부른다.

 

 

 


  나후라 [Rhula, 羅喉羅] - 밀행제일(密行第一)


산스크리트로는 "장애자"라는 뜻이며, 나호라(羅..羅) ․나운(羅云) 등으로 음사한다.

후에 석가의 10대 제자의 한 사람이 되고, 사미(沙彌)의 시조가 되었다.

석가는 이 아들을 낳자 도를 닦는 데 장애자가 생겼다고 하여 이 이름을 붙였다 하는데, 집안에 사내아이가 탄생함으로써 오히려 석가가 마음 놓고 출가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고 볼 수 있다.

20세에 구족계(具足戒)를 받고, 또한 계율의 자잘한 규칙까지 엄격히 지켜서 밀행(密行)의 제1인자로 불렸다.

 

 


  목건련 [Maudgalyyana, 目犍連] - 신통제일(神通第一)


별칭 : 목건라야나, 목가략자(目伽略子) 등으로 음사. 대(大)목건련 또는 마하(摩訶)목건련


목건라야나(目犍羅夜那), 목가략자(目伽略子) 등으로 음사하며, 대(大)목건련 또는 마하(摩訶)목건련이라고도 한다.

처음에는 사리불(舍利佛)과 함께 바리사바[波離沙婆] 외도인 산사야(刪耶)에게서 도를 배우고 그 학문에 정통하여 100명의 제자를 가르쳤다.

그러나, 사리불이 석가의 설법을 듣고 법안정(法眼淨)을 얻었다는 말을 듣고는 그 100명의 제자를 이끌고 불문에 집단 귀의한 뒤 석가의 가르침을 받은 후 스승을 잘 도와 "신통제일(神通第一)"이라는 영예를 얻었다.


 


  부루나 [Prna-maitryaniputra, 富樓那] - 설법제일(說法第一)


별칭 : 만자자(滿慈子)


"푸르나마이트라니라"는 산스크리트 이름은 원(願)을 만족시킨다는 뜻이 있어, 만원자(滿願子), 만자자(滿慈子), 만축자(滿祝子), 만견자(滿見子), 만엄식호(滿嚴飾好), 만족자자(滿足慈者), 만족(滿足), 원만(圓滿), 만축(滿祝) 등 여러 가지 말로 번역된다.

그 이름에 대하여 《중아함경(中阿含經)》에는

"내 이름은 만(滿)이다. 내 어머니는 자(慈)라 한다. 그러므로 모든 수도자들은 나를 만자자(滿慈子)라 부른다." 라고 했으니, 즉 Maitrayana족(族) 출신 어머니의 아들 Prna라는 뜻이 된다.


그가 태어난 곳은 카필라(Kapilavastu)성(城)의 이웃이며, 브라만 출신이다.

아버지는 카필라성주 정반왕의 국사이며 큰 부자였다.

그는 부처가 탄생하던 날에 태어나서 일찍 그 총명한 능력으로 베다(Veda)와 그 밖에 브라만교(敎)의 모든 논서(論書)들을 공부하고, 진세(塵世)를 떠나 입산수도하여 마침내 사선오통(四禪五通)을 얻었다.

그때, 부처가 성도(成道)하여 녹야원(鹿野苑)에서 설법하심을 듣고 친구들과 함께 부처에게 귀의(歸依),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얻었다.

그는 처음에 96종에 달하는 경서(經書) ․논서(論書)를 줄줄 외고, 스스로 일체의 지(智)를 얻었다고 자랑했으나, 부처에게 귀의한 뒤부터는 오로지 부처를 따라 교화 사업에 힘을 쏟았다.


또한, 사리불(舍利弗)이나 목련(目蓮)보다도 더 일찍 부처의 제자가 되어 사리불이 부처에게 귀의할 때에는 선배로서 그에게 설법을 하기도 했다.

설법 때마다 그는 먼저 변재(辯才)로써 뭇사람들을 기쁘게 만들고,

다음에는 폐부를 찌르는 고언(苦言)으로 그들의 마음에 절실한 가책감(苛責感)을 가지게 하고,

끝으로 밝은 지혜로 모든 것이 공(空)함을 가르쳐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예외 없이 해탈하게 하여,

마침내 열반에 이르기까지 99,000명을 제도했다고 한다.

이러한 여러 가지 업적에 비추어서 부루나를 불제자 중에서 "설법제일(說法第一)"이라 칭한다.

그는 여러 곳을 다니면서 인격과 변재로서 중생교화에 힘쓰다가 대오를 이루고 열반(涅槃)에 들었다.



  사리불 [riputra, 舍利弗] - 지혜제일(智慧第一)


본명 : 우파티사

별칭 : 산스크리트 샤리푸트라, 팔리어(語) 샤리푸타, 추자, 사리자(舍利子)

출생지 : 인도 중부의 마가다왕국 수도 왕사성 근처


산스크리트의 샤리푸트라, 팔리어(語) 샤리푸타(Sriputta)의 음역(音譯)이며, 추자(子), 사리자(舍利子)라고도 한다.

원명 우파티사. 인도 중부의 마가다왕국 수도 왕사성(王舍城) 근처의 브라만 출신으로, 젊었을 때부터 학문에 뛰어났는데, 당시 유명한 논사(論師)라고 일컬어지는 6사외도(六師外道)의 한 사람인 산자야 밑에서 출가승이 되었다.

불제자 아사지의 가르침을 듣고 깨달아 목건련(目..連) 및 250명의 제자들과 함께 불제자가 되었는데, 석가도 그를 높이 평가하였다.


그는 주로 교화 활동에 종사하였는데, 경전 중에는 석가를 대신하여 설법한 경우도 적지 않음을 볼 수 있다.

소위 10대 제자 중 수제자로, 지혜가 가장 뛰어나, "지혜제일(智慧第一)"로 칭송되었다고 전한다.

일설에는 석가보다 먼저 죽었다고 하고, 또 다른 파의 옛 설에서는 최초의 불교가 그에 의해 정립되었다는 기록도 있다.


  수보리 [Subhti, 須菩提] - 해공제일(解空第一)


산스크리트 이름의 한자 음역이며, 선(善), 선실(善實), 선길(善吉), 선업(善業), 공생(空生) 등으로 의역한다.

수보리는 사위국(舍衛國 : 슈라바스티)의 브라만 가문의 아들로 태어났는데, 특히 16나한(羅漢) 중의 하나로서 무쟁삼매(無諍三昧)의 법을 깨쳐 모든 제자들 가운데 제일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우주의 평등한 진리, 공(空)한 이치를 깊이 체득하였다.


《증일아함경(增一阿含經)》, 《찬진백연경(撰進百緣經)》 등에 그의 전기가 실려 있다.

《증일아함경(增一阿含經)》 제3 <제자품>에서는

"좋은 옷을 즐겨 입지만 행이 본래 청정하여 항상 공적을 즐기고 공의 뜻을 분별하여 공적의 미묘한 덕업에 뜻을 두고 있다. 그래서 은둔자 중에서 제일이라고 칭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고요한 곳에 은둔한다고 해서 그가 깊은 산속에 홀로 숨어 지냈다는 의미는 아니다.

사람들 속에서 생활할지라도 내면의 고요를 응시하면서 대립과 다툼이 끊어진 생활을 영위하였던 것이다.

다툼이 없는 무쟁행(無諍行)은 바로 맑고 향기로운 행이요, 무아의 빛이 외면으로 비추어진 행이다.

그래서 그는 무쟁도(無諍道)의 제일인자로서도 거론된다.


그는 어려서 성질이 사나워 부모․친척들 사이에서 큰 골칫거리였는데, 마침내 그러한 환경 속에서 출가, 입산수도하여 훌륭한 불제자가 되었다고 한다.

즉, 부처님의 교단에 출가한 이후 새로운 인물로 탈바꿈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수보리는 조용한 곳에서 무쟁의 삼매를 닦아 모든 법의 공적을 관찰하여 은둔제일, 무쟁제일, 해공제일의 인물로 떠올라 마침내 공양을 받을 만한 모든 성문, 아라한 가운데서 으뜸이신 분, 즉 소공양제일(所供養第一)로 찬탄받는다.


사물의 본성을 명확히 꿰뚫는 그의 탁월한 식견은 대승불교에 와서 확연하게 부각된다.

초기 반야계 경전의 정수이자 우리나라 조계종의 소의경전(所依經典)인 [금강경]에서 수보리 존자는 부처님의 상대역으로 등장한다.

스승과 제자는 서로 공의 모습에 대하여 묻고 대답하는 하모니를 이루어 결국 깨달음이라는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난다.


석굴암 십대 제자들의 무리 가운데 수보리 존자는 본존불을 향하여 좌측의 두 번째로 등장하는 비구로 어깨가 올라간 구부정한 모습이다.

두 손을 턱 밑에 모아 왼손의 엄지와 검지 사이로 오른손을 덮어 독특하게 포개고 있는데, 은둔자로서의 그의 개성을 강조하려는 듯 잔뜩 웅크린 모습이다.



  아나율 [Aniruddha, 阿那律] - 천안제일(天眼第一)


아나율 외에 아루타(阿樓陀), 아누타(阿馱), 아누루타(阿樓馱), 아니루타(阿尼樓陀), 아니율타(阿泥律陀) 등으로 음역하며, 무멸(無滅), 여의(如意), 무탐(無貪), 무장(無障), 선의(善意), 수순의인(隨順義人), 부쟁유무(不爭有無) 등으로 한역(漢譯)한다.

여러 경(經)들에 의하면 석가족(族) 출신으로 석가가 성도(成道)한 뒤 고향에 돌아왔을 때 난다(석가의 이복동생), 아난다(석가의 사촌동생)와 함께 출가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석가 앞에 앉아서 졸다가 책망을 듣고, 서원(誓願)을 세워 조금도 자지 않았는데, 그 결과 안질(眼疾)을 얻어 마침내는 두 눈을 못 보게 되었다.

육안을 못쓰는 대신, 심안(心眼) 즉 천안(天眼)이 열려 '천안제일(天眼第一)'이라고 불렸다.

심원한 통찰력에서는 그를 따를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석가가 입적하던 해 경전을 결집할 때 그 자리에 참석하여 일익을 담당하기도 하였다.

 


  아난다 [Ananda, 阿難陀] - 다문제일(多聞第一)


아난(阿難)이라고도 한다.

아난다라는 인도말은 환희, 기쁨[慶喜]을 뜻한다.

아난은 석가의 사촌동생이다.

불전(佛典)에는 그 아버지의 이름을 곡반왕(斛飯王), 감로반왕(甘露飯王), 백반왕(白飯王) 등으로 적고 있어 어떤 것이 옳은지 단정하기는 어려우나, 아난다의 아버지인 왕이 석가의 아버지인 정반왕(淨飯王)과 형제인 것만은 틀림없다.

석가가 성도(成道)하던 날 곡반왕 집안 하인이 정반왕에게 와서 "당신의 동생이 아들을 낳았다"고 전하였다.

정반왕이 크게 기뻐하여 "오늘은 매우 행복한 날이요, 기쁜 날이다"하면서 그 이름을 아난다, 즉 "기쁨"이라고 지었다고 한다.


《대지도론(大智度論)》에 따르면 아난다는 용모가 출중하였는데, 이것이 출가 후 아난다가 많은 부녀자들로부터 유혹을 당하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석가가 성도 후 귀향하였을 때, 난다(難陀), 아나율(阿那律) 등과 함께 그를 따라 출가하였다고 하는데, 대중들의 천거에 의하여 아난다가 20여 년 간 시자(侍者)를 맡아 가까이서 석가를 모시면서 그의 말을 가장 많이 들었으므로, "다문제일(多聞第一)" 아난다로 불렸다.


그가 남긴 업적으로는 석가의 이모 고타미(Gotami)가 출가를 청했을 때 석가를 설득하여 그녀의 출가를 성사시킨 일이 특기할 만한 것이다.

석가가 80세에 숨을 거둘 때 곁에서 지켜보았으며, 석가가 죽은 후 가섭의 지휘 아래 이루어진 경(經)의 편찬, 즉 결집(結集)에 참가하여 지대한 업적을 남겼는데, 경, 법(經法)이 후대에 전하는 것은 그의 공이 크다.


 


  우바리 [Upli, 優婆離] - 지계제일(持戒第一)


별칭 : 우발리, 우파리, 오파리, 근집, 근취


산스크리트 우팔리의 음역으로, 우발리(優跋利),우파리(優波梨),오파리(波波利) 등으로도 쓰며, 근집(近執), 근취(近取) 등으로 의역한다.

원래는 하층계급 출신으로 석가족(族) 궁정의 이발사였다.

석가가 왕궁에서 불법을 설하자 여러 왕자가 출가(出家)하여 입문해왔다.

우바리는 그들을 삭발해 주었는데, 이어 그도 입문이 허용되어 석가의 제자가 되었다.

그는 교단의 계율에 널리 통달했을 뿐만 아니라, 계율을 잘 지켰기 때문에 "지계제일(持戒第一)"이라 불리었다.

석가가 입멸한 뒤 제1회 자료결집(資料結集) 때에는 사람들 앞에서 그 율(律)을 읊어 후세에 남겼다고 한다.

 

'불교 공부방 > 불교 공부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거사와 처사   (0) 2010.11.28
백팔번뇌와 108배  (0) 2010.11.28
53선지식(善知識)  (0) 2010.11.28
나를 깨우는 백팔배 - 百八大懺悔文 [25分]  (0) 2010.11.18
부처수행법 - 누진통[漏盡通]  (0) 2010.1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