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bum (사진)/산행 (山行)

무등산과 주상절리대(柱狀節理臺)

法雨_김성근 2011. 12. 31. 22:05

무등산은 높이가 1,187km에 이르는 세계적으로도 유일하게 인구 100만명이 넘는 도시와 1,000m가 넘는 산이 맞닿아 있는 곳이라고 한다.

또한 무등산주상절리대는 약 7천만년 전에 형성된 것으로서 입석대와 규봉은 풍화가 많이 진행되어 기둥모양을 하고 있지만 서석대는 풍화가 덜 진행되어 병풍모양을 하고 있다. 정상을 중심으로 산비탈에 있는 "너덜겅"들은 이라한 돌기둥이 무너져 쌓인 것이라고 한다.

서있는 바위나 너덜겅들은 암석의 생성과 풍화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희귀한 자연유적이므로 서석대와 입석대를 천연기념물 제465호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주상절리(柱狀節理)"란 용암이 식을 때 수축되어 생기는 절리 중에 단면의 형태가 오각형이나 육각형의 기둥모양인 것을 말한다.

 

  원효사 버스 종점을 지나 처음 만나게 되는 옛길 안내도

 

 

 

  

  금곡동제철유적지(金谷洞製鐵遺跡地)

 무등산에서 철(鐵)이 생산되었다는 것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기록되어 있다.

 이곳은 임진왜란때 김덕령 장군이 무기를 만들었던 장소로 전해져 오고 있어 "주검동(鑄劍洞)"이라고도 부른다. 1992년 발굴조사결과 제철에 필요한 시설과 철에서 불순물을 제거하는 시설, 가공하는 시설이 확인되었다. 또한 쇠로 만든 화살촉, 추 모양 철기, 못, 찌꺼기 등이 발견되었다.

철의 원료는 가까운 계곡에 있는 사철(砂鐵)이었다고 한다.

 

 주검동 유적 (鑄劍洞 遺跡)

 충장공 김덕령 장군이 임진왜란 때 이 곳 원효사 계곡 부근에서 칼과 창을 만들던 곳으로 지금도 "주검동"이라 부르고 있으며, 의병활동과 거병에 필요한 군수물자를 제공하고, 무술을 연마하여 수련했던 골짜기이다. 이 바위에는 "만력계사 의병대장 김충장공 주검동(萬曆癸巳 義兵大將 金忠壯公 鑄劍洞)"이라고 새겨져 있는데  "만력(萬曆)"은 1573년부터 1620년까지 사용하던 연호이고,  "계사(癸巳)"란 선조26년 1593년으로 의병으로 활약하던 시기를 뜻하며, 충장(忠壯)"이란 시호(諡號)를 쓴 것으로 보아 1788년 이후 김덕령 장군의 활양상을 알리기 위해 후세에 새긴 것으로 보인다.

 

 

 

 

 

 물통거리 주변 대나무와 어우러진 오솔길 같은 등산로

 

 

  서석대로 오르는 길목에서 세찬 바람을 피해 허기를 때우는 등산객들

 

  서석대로 오르는 길목에서 바라다 본 중봉의 전경

 

  서석대 (瑞石臺, 천연기념물 465호)

  무등산 정상 서쪽에 수정 병풍처럼 둘러쳐져 상서로운 빛을 머금고 광주의 상징으로 우뚝 서 있다.

 이는 한반도 육지에서 가장 큰 주상절리대(柱狀節理臺)로서 자연유산으로 보전 가치가 높아 입석대와 함께 천연기념물로 지정(2005.12.16 / 107,800m2)되어 있다.

무등산의 서석대와 입석대는 중생대 백악기 후기(약 1억만년~6천만년 전)에 화산이 폭발하여 용암이 식으면서 수축현상에 의해 냉각 면이 수직방향으로 갈라진 이른바 기둥모양의 주상절리가 생성되었다.

빙하기를 겪으면서 현재와 같은 경관으로 드러나, 우리나라 그 어떤 산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오각 또는 육각형의 깍아지른 돌기둥이 신비로운 절경을 이루고 있다.

 

 

 서석대를 지나면서 올려다 본 무등산 정상(천왕봉)의 모습

 

 서석대를 지나면서 만나게 되는 "무등산옛길종점" 안내 표지판

 

 무등산 정상에서

 여기서부터  정상(1,187m)까지는 군사통제구역으로 민간인의 출입이 제한되고 있다.

 

 

 정상에서 입석대로 내려가는 길목에 자라고 있는 나무들. 수 많은 세월의 풍상을 견디며 겪었을 인고의 세월들을 짐작케 한다.

 

 승천암(昇天岩)과  전설

 옛날 이 부근의 암자에 무엇엔가 쫒기던 산양을 스님이 숨겨준 일이 있었다. 어느날 스님의 꿈에 이무기가 나타나 산양을 잡아먹고 승천해야 하는데 네가 훼방을 놓았다며 만약 종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너라도 잡아먹어야 겠다고 했다. 얼마후 난데없이 우렁찬 종소리가 들렸고 이무기는 곧장 스님을 풀어주고 승천하게 되었다는 전설이 얽혀있는 바위이다.

 

 입석대 주변 이야기와  "주춧돌 구멍"의 흔적

 제봉 고경명 선생이 쓴 유서석록에 의하면, 입석대 주변에는 입석암, 상원등암, 삼일암을 비롯한 1여개의 자그마한 암자들이 바위 사이 사이에 자리하고 함께 어우러져 무등산 제일의 명소라고 했다.

그 흔적으로 기둥을 세웠던 구멍뚫린 주춧돌을 쉽게 찾아볼 수가 있어 이를 뒷받침해 주고 있다.

 

 입석대를 향해 내려가는 길목 여기 저기에 널려 있는 주상절리 입석(立石)

 

 입석대(立石臺)에서

 무등산 입석대는 백악기 후기(약 1억만년~6천만년전)에 화산이 폭발하여 솟구쳐 오른 용암이 지표로 흘러나와 냉각되면서 생긴 주상절리대이다.  높이가 10~16m에 이르고 5~8모로 된 돌기둥이 우람차게 둘러서 있어 그 형상이 신비로워 서석대와 함께 천연기념물(제465호)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장불재의 송신탑과 등산객을 위한 시설물

 

  장불재에서 바라다 본  "입석대"

 

  장불재에서,    저 멀리 "서석대"의 모습을 담아...

 

 널부러져 있는 바위의 조그마한 틈새에서 크게 자라난 벚나무

 자연상태에서의 생명력이 경이롭게 느껴진다.

 

  중머리재에서 내려다 본 광주시가지     날씨가 흐린 탓에 선명한 모습을 담지 못해 아쉬움이.....

 

 하산길 끝자락에서 만난  "무등산증심사 일주문"     다른 일정에 쫒겨 둘러보지 못한 아쉬움을 뒤로 하고....

 

 의재 허백련 문화 유적

 증심사 아랫쪽에 자리잡고 있는 남종화의 대가 허백련 화백의 터전

 

 

  의재 미술관

 

 바위틈새를 비집고 힘겹게 자라고 있는 이름모를 나무 (오동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