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마다 의식이 다른 이유
어느 종교든 사상(수행)과 신앙의례를 핵심적인 두 내용을 축으로 하고 있으며 이 두 내용은 종교를 종교답게 하는 두 수레바퀴인 것이다.
그러므로 두 내용 중 어느 한편에 치우침은 종교로서의 정체성에 심각한 문제를 불러일으킨다.
삼국~고려의 1000년 불교는 양자의 조화를 바탕으로 성세를 이루었다.
그러나 조선조 이래 사상과 수행의 쇠락으로 인한 정체성의 약화는 역설적으로 속화된 신앙의례의 번성을 통해 보완되었다.
일제 시대 이래 불교 정화를 주도한 수행승들의 주요 화두 중 하나가 신앙의례의 간소화였으며 심지어는 기본 예경 외 의례의 폐지였던 것은 이 때문이다.
한국 현대불교의 장자교단인 조계종은 종단의 분규와 갈등 속에서도 개별 사찰이나 단체에서 많은 법요집을 간행하였고 광덕, 월운 스님 등에 의해 선구적인 한글법요집이 상재되었으며, 1998년에는 개혁종단에 의해 통일법요집이 간행되었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시안의 성격을 갖고 있으며 의례의 종단적 통일을 이루기에는 역부족이었고 오히려 전통의례에 근거하지 않은 채 조급하게 의례의 현대화를 이루려는 무리한 시도가 처처에서 시도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불교의례의 난맥상은 여러 이유가 있다.
먼저 조계종의 종파로서의 정체성이 거론될 수 있다.
정화 과정에서 수행자 중심의 선종을 표방하며 종교의례를 경시하거나 관심을 갖지 않은 것이다. 심지어 석문의범 등 전통의례를 비불교적이고 번잡하다 하여 매도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조계종이 모든 의례를 ‘선종의례’로 전면적이고 철저하게 재편하지 않는 한 이러한 갈등은 해소될 수 없다.
다음으로 의례의 교육이 체계화되지 않은 점을 들 수 있다.
의식 예문의 정비와 현대화(한글화 포함), 의식 절차의 정비는 문제 해결의 방도로 수없이 거론되었다.
그러나 이를 위한 종단의(혹은 범불교계의) 권위 있는 기구는 아직도 설립되고 있지 않다.
아직도 주요 관심 대상이 아닌 것이다.
이에 한국불교의례를 연구하는 기관의 설립은 매우 시급한 과제이다.
이에는 의식 전체를 꿰뚫을 수 있는 큰스님(강백), 의식 전문가인 법주, 지역(본사) 단위 대표자등 스님을 주축으로 하여 의식 연구 전문가, 국어학자와 문학자(한글화), 각 예술(음악, 무용, 미술장엄) 전문가 등이 포진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 기관의 활동은 결코 일회적인 과제풀이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지속적인 연구와 대중 의견 수렴, 전문가의 자문을 거쳐 5년이나 10년 단위로 불교의례의 모본(母本)을 제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