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공부방/전각, 기타

불탑의 종류와 성격

法雨_김성근 2010. 12. 12. 19:51

1) 개요


탑은 그 재질에 따라 석탑, 전탑, 목탑, 모전석탑, 청동탑과 금동탑으로 나뉘며 형태에 따라 감탑, 주탑, 안탑, 라마탑, 보현인탑, 오륜탑, 무봉탑 등으로 나누기도 한다. 우리 나라에서는 '탑'이라고 하면 대개 불국사 석가탑처럼 돌을 다듬어 쌓은 삼층석탑을 떠올리지만, 세계 모든 탑이 모두 그러하지는 않는다. '탑'이라는 용어가 불교의 전파과정에서 지역어에 맞게 정착되었듯이 탑의 모양도 지역 특성에 따라 형성되었고, 그래서 나라마다 특징도 다르다.


탑은 원래 인도 고유의 무덤 형식에서 석가모니 사리를 모신 축조물에세 비롯되었다. 불교의 창시자인 석가모니가 돌아가자 유해를 화장하여 나라에 나누어주고 탑을 세우게 하였으니 그것을 근본 팔탑이라고 한다. 지금 남아 있는 탑으로 가장 오래된 것은 인도 산치에 있는 거대한 탑으로 기원전 1세기에 기본 구조가 축조된 것이다. 반구를 엎은 모양인 무덤 자체에는 맨 위에 우산 같은 덮개처럼 산개를 얹었을 뿐 다른 장식이 없으나, 둘레에 돌난간을 두르고 동서남북에 석가모니의 생애를 조각한 문을 세웠다.


그후 불교가 동쪽으로 전해질 때에 한길로는 비단길을 따라 중앙 아시아를 거쳐 중국의 북방을 통해 우라나라로 전파되었고, 다른 한길로는 인도 남부의 스리랑카에서 바닷길로 인도차이나 반도를 거치고 중국남부를 통해서 전파되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인도의 묘탑 형식이 고집되기보다는 각 지역의 고유한 건축물에 부처의 사리를 모시게 된 것이다. 중국에서는 원래의 다층 누각이 초기의 탑이 되었고, 뒤에 벽돌을 쌓아 구축한 전탑으로 자리 잡았다. 일본에서는 지질의 이유로 전탑이나 석탑보다는 목탑이 특히 발달하여 탑의 주류를 이루었다.


2) 석탑

부처의 사리를 안치하기 위하여 돌을 쌓아서 만든 탑으로 뒤에는 묘갈이란 骕으로 사용되어 분탑 또는 묘탑이라고도 하였다. 중국에서는 서진시대의 문헌에 이미 보이며 현존하는 예로서 5세기경의 운강 석굴안에 있는 4각 5층석탑 등이 있다. 양질의 화강암이 많은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 말경인 600년경부터 석탑이 건립되기 시작하여 탑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 석탑은 이전에 많이 건립되었던 목탑형식을 모방한 7세기 중엽경의 부여 정림사지 5층 석탑과 7세기 초에 건립된 탑으로 우리나라 석탑가운데 가장 오래되었고 규모가 큰 익산 미륵사지 석탑이 있다. 신라시대에는 전축기법에 의해서 만들어진 경주 분황사 석탑이 드문 예에 속한다.

통일신라시대에는 전형적인 석탑 형식인 4각 석탑이 크게 유행하여 감은사지 동서 3층 석탑, 고선사지 3층 석탑, 황복사지 3층 석탑, 불국사 석가탑과 다보탑 등이 경주 일대에 남아있다. 또한 탑신부나 기단부에 불상이나 문양을 화려하게 새긴 원원사지 서 5층 석탑, 화엄사 4사자 3층 석탑, 정혜사지 13층 석탑 등 특이한 형태의 석탑도 있다.

고려시대에는 다양한 양식변화를 보이는데 개성 현화사지 7층 석탑을 비롯하여 남계원 7층 석탑(경복궁 소재), 흥복사 석탑 등 통일신라시대의 4각 석탑 형식을 따르는 예가 있으며 또 중국 요, 금의 영향으로 월정사 8각 9층 석탑이나 원나라의 장인이 만든 경천사지 10층 석탑과 같은 다각다층석탑도 나오게 되었다. 조선지대 석탑으로는 10층 석탑을 그대로 따른 원각사지 10층 석탑과 낙산사 7층 석탑 등이 전해지고 있다.

 

3) 전탑

전탑은 벽돌을 만들어 쌓은 탑으로, 안동 등 일부지역에 남아 있으나 크게 유행하지는 못한 형

식이다. 전탑의 특징은 단층기단 위에 탑신을 세우며, 옥개석(屋蓋石) 위아래는 모두 층단(層段)을 이루고, 옥개석의 폭이 현저하게 좁아지며, 옥개석의 추녀 밑이 끝까지 직선이 된다.

 

통일신라시대에 건탑(建塔)에서 보는 옥개석 위에 기와를 입힌 수법 또한 전탑에 앞서 목탑이 있었다는 증거가 되며, 단층의 기단에 감실(龕室)을 개설함에 있어 그 주변과 감실 자체에 화강암을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전탑의 예로는 안동 신세동(新世洞) 7층전탑(8세기), 안동 동부동 5층전탑(8세기), 안동 조탑동 5층전탑(8세기),중국 장백 조선족 자치현에 있는 발해의 5층전탑인 영광탑 등이 있다.


 

4) 목탑

목탑은 그 자체가 목재가 주여서 여러 차례의 전란으로 모두 소실 되어 삼국시대나 고려시대의 것은 남은 것이 없다. 다만 현재 그 터전만이 각처에 흩어져 있을 뿐이다. 예컨데, 경주 황용사 구층 목탑 지와 사천왕사 목탑지는 신라 목탑 터전의 대표적인 것이며, 부여 군수리 목탑지는 백제의 것이고 평양 청암리 절터의 목탑 터전은 고구려 시대의 대표적인 목탑 터전이다. 다만 목탑 양식을 전해 주는 유례로서는 조선시대 후기(17세 기초) 의 건축물인 충북 보은의 법주사 팔상전과 전남 화순의 쌍봉사의 대웅전이 있을 뿐이다.

초기의 목탑은 삼국이 모두 중국의 고루형 목탑 양식의 조형을 모방하여 누각형식의 여러 층으로 건립했을 것이며, 방형(방형) 혹은 다각형의 평면을 이루었을 것으로 학자들은 추정한다. 이러한 추정은 현재 남아있는 당시의 유구들에 의한 것이다. 그리고 특히 신라의 유지로는 경주 황룡사의 거대한 방형 평면 의 구층목탑지를 들 수 있다. 이 탑은 신라 선덕여왕 즉위 12 년(AD643) 중국 당나라에 유학하고 돌아 온 자장법사(자장법사)의 요청에 의하여 이룩된 것이다. 이 대탑을 조성하게 된 동기와 경과에 대해서는 삼국유사의 기록이 참고가 된다. 삼국유사의 기록은 최근에 발견된 황룡사구층탑 심초석에서 나온 탑지에 의해 그 기술이 정확한 사실임이 판명되었다. 이 탑은 조성된 후 50여 년이 지난 효소왕 7년(698)에 벼락을 맞아 불에 타버린 이래, 여러 차례 중성되어 계속 그 웅장한 모습을 유지해 왔으나, 고려 고종 25 년(1233) 몽고군의 병화로 말미암아 사찰 전체가 불타 버린 참화에 휩쓸린 이후, 다시는 중수되지 않고, 폐허화된 상태로 남게 되었다. 이 탑지에는 도굴꾼에 의해 심초석 안에 있던 사리함을 도난 당했으나, 그후 도굴단이 잡혀 사리함이 회수되어 지금은 국립 중앙박 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5) 모전석탑

돌을 벽돌과 같이 모각(模刻)하여 만들어 쌓은 모전석탑은 건탑재료로 석재(石材)가 이용되었을뿐, 그 형식은 전탑과 같은 축조과정(築造過程)을 거치기 때문에 그 형태는 전탑과 다를바 없다.

이런 석탑으로는 경주 분황사(芬皇寺) 모전석탑(634년), 영양 봉감 5층모전석탑(고려), 제천 장락리 7층모전석탑(고려), 정선 정암사 수마노탑(水瑪瑙塔 ; 고려) 등이 있다.

 

6) 모전석탑의 양식을 따른 석탑

이탑은 석재를 벽돌과 같이 가공하지 않고 전탑의 외형만을 모방한 탑으로 전탑이나 모전석탑과는 다른 특수한 석탑이다. 이러한 것은 수에 있어서는 많지 않으나 이것으로 문화의 한 수용단계에서 나타난 특이한 현상을 찾아 볼 수 있겠으며, 이색적인 전탑에 대한 호기심과 평소에 연마한 석조(石造) 기술의 합작으로 만들어진 것이라 하겠다. 탑신부의 전체적인 형태로는 옥개의 단촉(短促), 옥개상하면의 층단표현(層段表現) 등 전탑의 특징을 갖추고 있으며, 이 유형에서 주목되는 것은 기단부의 구조인데 일반형석탑에서 볼 수 있는 축조기법을 이용하여 단층 혹은 이층의 기단을 이루고 있는 것이 있고, 또 하나의 형식은 촉석(數石)으로 구축하여 괴체성(塊體性)을 보이며 입방체의 이형(異形) 기단을 이루고 있는 점이다. 그리고 탑신부에 있어서는 일반형석탑의 옥개석과 같이 괴체성을 보이고 있는 옥신을 이루고 있는 것이라 하겠다. 이 유형의 탑(塔)으로는 의성 탑리 5층석탑(700년 전후), 선산 죽장동 5층석탑(통일신라), 선산 낙산동 3층석탑(8세기), 경주 남산리 동3층석탑(9세기), 경주 서악리 3층석탑(9세기), 의성 빙산사지 5층석탑(나말여초), 강진 월남사지 모전석탑(고려) 등이 있다.


7) 목탑의 양식을 따른 석탑

기단이 얕은 단층기단(單層基壇)이고, 옥개석의 폭(幅)은 탑신의 폭에 비하여 현저히 넓고, 옥개석밑은 목조건축의 공포구조(供包構造)를 모방하였고, 옥개석의 추녀 밑은 네 귀가 위로 반전(反轉)되어 목조건축의 형식을 따랐고,

각 부(部)의 구조는 많은 돌을 써서 목조건축의 가구법(架構法)을 따랐다.

특히 익산 미륵사지석탑(彌勒寺址石塔)은 일면삼칸(一面三間)의 건물형식을 취하였는데 가운데칸(中間間)은 개방되어 내부로 통하게 되어 있고 내부에서 교차되는 중심에는 거대한 찰주석(擦柱石)이 있어 가장 충실히 목조탑의 형식을 따른 것이라 하겠다. 이런 목조탑의 양식을 따른 석조탑의 예로는 백제시대의 익산 미륵사지석탑, 부여 정림사지 5층석탑, 고려시대의 익산 왕궁리(王宮里) 오층석탑 등이 있다.